회식 이야기가 아니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진행하는 임상시험의 홍보방법을 놓고 하는 말이다. 최근 다국적 제약사들이 자사가 추진하는 글로벌 임상시험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있는 것처럼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행위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임상에는 주요 평가목적으로 설정한 1차와 2차 엔드포인트가 있다. 1차 엔드포인트는 임상의 주된 목적인 만큼 그 달성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또 2차 엔드포인트는 1차에 성공해야 비로소 그 효과를 인정할 수 있다는게 학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이론과 달리 제약사의 홍보 방식은 사뭇 다르다. 분명히 1차 엔드포인트 달성에 실패한 스터디인데도 2차 엔드포인트에서 나온 일부 유효성을 강조하며 임상시험이 성공한 것처럼 알리고 있다. 적어도 생산해낸 자료의 제목만 봐서는 그렇다.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우선 2차 엔드포인트에 무게를 싣는 경우다. 고지혈증치료제 바이토린의 경우 유럽심장학회에서 발표된 SEAS 스터디에서 1차 엔드포인트를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MSD는 2차 목표인 허혈성 심혈관질환 예방이 위약군에 비해 약 22% 감소 효과를 나타냈고, 판막수술을 받은 환자에서 관상동맥우회술 시행도 약 32% 낮췄다며 스터디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주평가가 아닌 사후분석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유럽당뇨병학회에서 발표된 고혈압치료제 칸데살탄의 DIRECT 연구는 고혈압 치료제가 당뇨성 망막증의 발현 및 진행을 억제시키는데 효과적인지를 규명하기 위한 것으로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실패하자 회사 측은 당초 엔드포인트가 아닌 사전정의된 사후분석(3단계 진행, 1차 엔드포인트는 2단계)인 당뇨성 막막증 발병이 위약군 대비 35%나 낮아졌다고 강조했다.

유럽심장학회에서 발표된 TRANSCEND 연구도 마찬가지. ACE 억제제 복용이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고혈압치료제 텔미살탄의 효과를 확인하는데 실패하자 베링거인겔하임은 2000년 발표된 획기적인 HOPE 임상연구가 정의한 1차 결과 변수를 기준으로 바꿔 홍보하는 모습이다. 이 기준으로 볼 때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 심근경색, 심장마비 및 뇌졸중 발생 위험은 13% 줄어들게 된다.

관상동맥질환자 10,917명을 대상으로 선택적 심박수 저하제인 프로코랄란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된 BEAUTIFUL 스터디도 한 사례다. 연구에 실패하자 세르비에는 분당 심박수과 70회를 초과하는 환자에서 심근경색에 의한 입원 가능성을 36% 감소시켰으며 관상동맥 개통술을 30% 감소시켰다는 서브 분석 홍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이처럼 제약사들이 1차 엔드포인트 달성에 실패한 스터디를 2차 엔드포인트에서 의미를 찾아 알리는 이유는 실패한 스터디로 비춰지는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한 최대한 연구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차 엔드포인트가 실패한 스터디는 결과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는게 대부분의 의사 및 학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임상의사는 “어떤 연구를 막론하고 1차 엔드포인트에서 실패한 스터디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면서 “따라서 주 연구 목적이 실패해면 2차에서 유의미한 경우가 나왔더라도 이는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하지만 실패는 새로운 임상 가능성을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분명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즉, 제약사입장에서는 아쉽지만 큰 의미 부여는 무리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