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에 달하는 건보재정 흑자분을 당장 어디다가 쓰려고 하기 보다는 법정준비금으로 비축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

의료계 역시 건보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건강보험공단은 20일 '건강보험 재정 흑자,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주제로 건강보험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토론자로 참석한 대한개원의협의회 유승모 정책이사는 "이미 2000년 초반에 재정파탄을 겪었다. 돈이 조금 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주머니가 비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공급자 입장에서도 (흑자분을) 법정준비금으로 적립하는 것이 맞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및 3대비급여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유 이사는 "대통령 공약 때문에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10조가 넘는 재정을 쏟겠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 우선순위 결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 공급자가 틀렸다고 말하면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대통령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사죄하고 과감하게 처리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유 이사는 "지금은 건보 재정 내실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의사와 환자, 정부와 의료공급자 갈등을 해소하는데 먼저 신경쓰고, 남아 있는 것은 법정준비금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재무상태 고려하면 건보재정, 낙관적 상황 아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다른 전문가들 역시 건보재정이 흑자라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지속가능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기획실장은 "전례를 보면 건보재정에 여유가 생기면 보장성 강화, 수가인상 등에 반영해왔다. 재정이 탄탄히 안정화가 됐다고 할 때 써야 한다"고 현실을 짚었다.

이어 "진료비 둔화 요인들이 단기적인 것인지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질환별로도 데이터를 구축하는 등 재정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예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영회계법인 배성규 이사는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현재 건보재정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는 "보험료 수입감소, 지출 증대에서 5% 정도의 변화만 있어도 바로 재정이 소멸하는 문제가 있다. 자산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사실상 흑자는 3조원 가량이다"고 말했다.

이어 "재무상태까지 고려하면 상당히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보험료 인하, 보장성 강화, 수가인상 등을 논하기에 이른 시기"라고 주장했다.

건보재정은 흑자지만 재정상태를 볼 떄는 부담해야 할 비용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성 있는 흑자이기 보다는 단기적인 성격이 더 높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흑자분 어떻게 쓸지, 운영의 묘를 살려야"

전문가들의 지적에 보건복지부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하지만 어떻게 쓰는 게 효율적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 중 유일하게 흑자분을 써야 한다는 주장을 소극적으로나마 펼쳤다. 어떻게 '잘' 쓸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전제와 함께.

복지부 보험정책과 백진주 사무관은 "기본적으로는 보험료 인상과 누적적립금(흑자 재정) 활용을 적절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흑자분을 활용하면 보험료 인상률이 적어질 것이다. 국민 부담 완화를 위해서 적절하게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재정 안정화를 위해 두 가지 노력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수익 확대를 위해 건보부과체계기획단을 통해 소득중심의 형평성 있는 부과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또 의료기관기능 재정비 등 자원관리를 철저히 해서 지출도 효율화 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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