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로슈진단이 오랜기간 돈독한 파트너였던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팽(烹) 당할 위기에 놓였다. 회사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적십자사는 요지부동이다.

문제는 대한적십자사가 혈액사고 방지를 위한 핵산증폭검사(NAT) 시스템을 새롭게 도입하면서 불거졌다. NAT는 헌혈 혈액의 에이즈와 C형 간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다.

적십자사는 지난 2005년부터 이 검사를 시행해 왔지만 최근 장비 노후화로 인해 B형 간염 검사를 포함한 대대적 장비 교체작업을 진행중에 있다.

실제 이 사업은 장비 구입비 100억원에 향후 5년 간 시약 및 검사비까지 포함하면 1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큰 규모의 국책사업이다.

하지만 이 장비 구입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현재 NAT 검사장비는 전세계적으로 로슈진단과 노바티스 등 2개 회사만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

기술방식은 로슈진단이 6개 검체를 한꺼번에 검사하는 pool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 노바티스는 각각의 검체를 별도로 확인하는 단일검사 방식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적십자사가 차기 NAT 장비의 최우선 조건으로 ‘민감도’를 제시하면서 두 회사의 명암이 엇갈리게 됐다.

로슈진단 장비는 적십자사가 제시한 민감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반면 노바티스 제품은 부합되기 때문에 사실상 노바티스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당초 적십자사는 이 같은 방침을 두 업체에 전달하고 공개입찰을 진행하려 했지만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로슈진단이 사전에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노바티스로의 수의계약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지난 십 수년간 적십자사의 검사장비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로슈진단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게될 처지에 놓인 셈이다.

로슈진단 측은 적십자사가 제시한 기준에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회사 관계자는 “민감도는 검사장비의 우열을 가리는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어느 국가에서도 민감도 만으로 입찰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공개입찰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특정 회사 제품에 부합하는 기준을 제시해 수의계약을 하는 것은 특혜 의도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기준이며 모든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문제시 될게 없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로슈진단의 6pool 방식이 검체 누락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국민건강을 위해 민감도에  우수한 노바티스 장비를 구입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혈액사고 방지를 위한 검사는 비용으로 환산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 민감도를 충족한다면 회사는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로슈진단 측의 반발을 감안, 차후 논란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형식적으로나마 공개입찰을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NAT 장비 구입을 위해 지난해 총 55억원의 예산을 받았으나 업체 선정이 늦어지면서 국회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메디칼트리뷴 기사제휴 데일리메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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