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용어의 한글화에 대한 그간의 각종 토론이 이어져 오는 가운데 일반인들이 생소한 의학용어는 그냥 쓰고, 한글화해도 무방할 경우에만 바꾸는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공청회를 거친다는 전제 조건하에서다.

4일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제5회 의료와 멀티미디어 심포지엄에서 서울의대 지제근 명예교수는 의학용어의 개정은 단순히 의료계에서만 해선 안되며 과학기술용어와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점진적이고 신중한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보편적이면서 의학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의학용어를 제정하려면 대표용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용어 선정은 의학교육 경험자, 의학적 지식이 광범위해 기본용어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사람 1천명을 표본으로 하여 선정한 후 다시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점진전직 선정법을 제안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아주의대 해부학교실 정민석 교수는 의학용어의 한글화를 주장하면서 한글화의 걸림돌은 의학자들의 새 용어에 대한 거부감을 들었다.

정 교수는 "새 용어는 길고 어색하고 점잖지 못해 결국을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게 한글화 반대론자의 주장이다"면서 "하지만 영어보다는 새 한글의학용어가 짧아 쓰다보면 익숙해진다"면서 용어의 한글화를 주장했다.

정 교수는 "당장에 쓰기 어렵지만 먼 훗날을 생각해서 의학용어를 차분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용어가 나와 사용빈도가 많은 단어를 선택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한글화 반대론자로 나선 울산의대 박인숙 교수는 "의학용어의 한글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의학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의학용어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의학 관련 종사자 즉 의료기사, 간호사, 의학관련 기사 등 바꿔야 하는 개정에 따른 수고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얼마전 한 신문에 "현재 병원이나 의대의 등급을 매기는 기준이 SCI급 논문 발표수가 중요해지고 있는 마당에 의학용어의 한글화 작업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며 민족주의적 발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교수는 "일본이 의학용어를 자국어화하다 세계 의학의 변방국가로 전락한 것을 타잔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전면적인 한글화는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수는 대안으로 이미 보편화된 의학용어들은 바꾸지 말고 그대로 사용하고, 각 명칭마다 우리말 하나씩만을 알아두고, 우리말이 더 쉬운 경우에는 이를 선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인플루엔자, 스텐트, 미토콘드리아 등 이미 한글화된 단어들은 그냥 사용하는 편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의학용어 때문에 환자와 의사간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학용어의 한글화가 아니라 자세한 설명을 통해 이를 보완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울산의대 최창민 교수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예로 들고 우선 COPD를 사용하고 이를 모르는 환자에게는 풀어서 설명해 주면 간단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물론 COPD를 간단하게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없어서다.

최 교수는 앞으로 더 많은 질환이 발생하면서 관련 단어가 더 많이 생기게 될 경우 의학용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어 자세한 설명이 뒤따르는 영어약자를 사용하는게 타당하다고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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