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에 수두를 일으키는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ZV)는 수두감염증 후 오랜기간 신경절에 잠복하다가 노화, 스트레스, 피로 등을 계기로 재활성되어 대상포진(herpes zoster)을 일으킨다.

대상포진은 다양한 강도의 통증을 동반하는데 일부 환자에서는 피진이 치유된 후에도 오랜기간 통증이 남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대상포진 후 신경절(PHN)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상포진에 동반하는 통증과 PHN이 왜 발생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 후지야마대학대학원 바이러스학 교실 시라키 기미야스 교수와 일본이화학연구소 뇌과학종합연구센터 즈모토 다다하루 연구팀은 VZV 재활성시 환자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항체가 척추의 통각과민 네트워크 형성을 촉진시킨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VZV는 신경섬유속 타고 대상포진 유발

VZV는 초기 감염시 수두를 일으킨 다음 전신의 신경절에 잠복 감염한다. 재활성되면 연간 1천명 당 4.15명 빈도로 대상포진을 일으킨다.

환자는 대부분 고령자이며 70대에는 1천명 당 8명, 80세까지는 3명 중 1명이 대상포진을 앓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의 환자도 드물지 않다.

신경의 일정 분포 영역을 따라 신경통과 유사한 통증을 동반하는 부종 모양의 홍반과 수포가 나타난다.

통증은 대개 수포가 가피회되어 치유될 때 쯤 사라지지만 일부 환자는 3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되는 PHN에 걸린다. PHN은 60세 이상 환자의 12.5%에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헤르페스바이러스의 아과(亞科)에 속하는 단순헤르페스바이러스(HSV)도 VZV와 마찬가지로 신경절에 잠복감염하고 재활성되면 대상포진과 유사한 구순 헤르페스와 성기헤르페스를 일으킨다. 그러나 통증을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상포진 특유의 통증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게 없다.

재활성화시 HSV와 VZV의 움직임의 큰 차이는 HSV가 신경섬유속을 따라 신경종말에서 증식하고 그 부분의 피부에 산재성 병변을 만드는 반면, VZV는 신경섬유속을 따라 신경속을 상해시키면서 해당 신경섬유속의 지배 영역에서 대상포진을 일으킨다는 점이라고 시라키 교수는 말한다.

따라서 HSV는 신경섬유속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환자는 오히려 통증에 둔감해지지만 VZV는 신경섬유속을 손상시키고 이것이 대상포진에 동반하는 통증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VZV 특이항체 IE62는 BDNF와 면역교차

HSV와 VZV의 또하나 차이점은 VZV에서는 재활성됐을 때 VZV 특이적으로 통증에 관여하는 면역이 유도된다는 점이다.

신경세포내에 잠복감염해 있던 VZV가 다시 증식을 시작하면 VZV 특이적 전사인자인 immediate-early(IE)62가 활성되어 바이러스 유전자의 전사를 촉진시키는데, 이 IE62에 대한 항체는 환자 체내에서 생산된다.

연구팀은 또 뇌유래 신경영양인자(BDNF)에 주목했다. BDNF는 신경세포의 발생과 생존, 돌기의 신장(伸長)을 촉진시키는 신경성장 인자의 하나다.

통각계에도 관여한다. 척추후각내에서 마이크로글리어가 생산하는 BDNF는 래트 신경손상 모델에서 알로데니아(allodynia)라는 통각 과민에 관련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Coull JA, et al. Nature 2005; 438: 1017-1021).

연구팀은 BDNF와 VZV가 IE62에 대한 항체에 어떤 관련성이 있으며, 대상포진의 통증과 PHN에 기여한다고 가정해 이를 검증해 보기로 했다.

IE62와 BDNF에 대한 모노클로널항체를 3종류씩 준비해 각 항체가 IE62단백질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웨스턴블로트법으로 검토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IE62와 BDNF라는 아미노산 상동성이 전혀 없는 2개 단백질에 대해 각각의 모노클로널 항체 가운데 1종류만이 IE62의 414~429의 아미노산 배열 부분을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특이적 에피토프를 가진 IE62 모노클로널항체(이하 항IE62항체)는 동시에 BDNF의 2량체를 인식했다. 즉 IE62와 BDNF는 면역학적으로 교차활성을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 항IE62항체는 BDNF에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통각은 손상된 말초의 신경세포에서 뻗어나온 축삭이 후근신경절, 척수후각을 타고 뇌로 올라가 통증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발생한다.

척추후각에서 채취한 배양 신경세포의 배지에 BDNF만 첨가한 경우와 BDNF와 항IE62 항체를 동시에 추가한 경우에 나타나는 신경세포의 형상을 비교했다.

그 결과, 후자에서는 수상돌기수가 크게 늘어나고 돌기 역시 크게 신장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시에 신경세포체 자체의 면적도 증가하고 항IE62 항체가 척수후각에서 BDNF의 움직임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각과민은 신경손상 동반안되면 발생안해

돌기가 크게 신장된 배양신경세포에서는 BDNF의 활성화 마커로 알려져 있는 arc와 Bdnf의 발현이 높아졌다. 이들은 시냅스 가소성과도 관련하는 activity-regulated cytoskeleton-associated protein을 코드한다.

반면 신경세포의 BDNF수용체 TrkB의 억제제인 k252a를 첨가하자 수상돌기수와 신경세포체의 면적은 모두 증가하지 않았다.

돌기의 길이 역시 항IE62항체를 첨가하지 않은 세포와 동일한 수치가 되고, 항IE62항체는 BDNF와 반응하고, BDNF-TrkB의 상호작용을 통해 BDNF활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마우스의 척추신경(L5요추)을 묶어 말초신경 손상모델을 만들고 항IE62항체를 추강내에 투여한 후 매우 가느다란 필라멘트를 피부에 대고 촉각의 유무와 지각 과민을 검출하는 von Frey 필라멘트법으로 알로데니아의 발생 여부를 통각 역치의 변동으로 검토했다.

그 결과, 신경을 손상시킨 쪽에서만 항IE62 항체투여군에서 통각 역치가 유의하게 낮아졌다.

시라키 교수는 이 실험결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BDNF의 2량체를 인식하여  BDNF를 부활시킬 수 있는 특이한 에피소드를 가진 IE62항체가 추강내에 존재해도 신경손상이 발생하지 않은 건강한 신경세포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대개는 통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약한 자극에 강력한 통각 반응을 보이는 알로데니아가 발생하려면 우선 신경손상, 그리고 항IE62항체와 BDNF의 존재 등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 마우스의 정맥내에 항IE62항체를 투여했을 경우에는 신경손상측, 비손상측 어디에서도 통각 역치의 변화는 관찰되지 않았다.

항IE62항체-BDNF상호작용은 통증 모델로서도 중요

실제 환자에서는 어떨까. 대상포진과 PHN 환자 9례의 혈청에서 검출된 IE62항체 가운데 BDNF와 면역교차가 나타난 항IE62 항체보유자가 4례 나타났다.

이러한 환자 혈청을 1만분의 1로 낮춰 배양신경세포에 첨가하자 Bdnf의 전사활성은 크게 높아졌다.

시라키 교수는 "IE62는 매우 큰 단백질이라서 환자 체내에서는 그 다양한 부위를 에피소드로 하는 다양한 항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BDNF와 면역학적으로 교차활성을 보이는 항체도 매우 일부 환자에서 나타나 통각과민이나 PHN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한편 이번 연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시라키 교수는 "지금 당장 대상포진이나 PHN의 새로운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는 효과는 없다. 그러나 이 특이적인 에피소드를 가진 항IE62 항체가 BDNF를 통해 통각회로를 증폭시키고 통증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이번 연구성과는 말초신경장애의 중요한 통각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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