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부재, 매출부진, 치료패턴 변화가 원인

국내외 제약사들을 막론하고 최근 제약업계에 불고 있는 최강 화두는 ‘뭉침’이다. 사자성어로는 오월동주(吳越同舟: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끼리도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가 가장 적합한 느낌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트렌드가 마치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국내외 제약업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비롯하여, 약 개발, 영업·마케팅 트렌드 까지 모두 들어맞고 있어 신기할 따름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기업 간 M&A다. 올 초 세계 최대의 제약사인 화이자와 와이어스, 머크와 쉐링푸라우 , GSK와 스티펠 등의 인수합병이 발표되면서 이러한 '뭉침' 트렌드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조만간 사노피-아벤티스, 로슈 등도 이 대열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약사들 역시 이러한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 중외제약과 크레아젠홀딩스, 코디너스와 한서제약, 제넥셀세인과 청계제약 등 잇따른 인수합병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얼마 전 녹십자도 인수대상을 물색하고 있다고 밝혀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 간 합병까지는 아니지만 벤처기업간의 투자 등을 통해 꾸준히 단결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도 뭉침 트렌드의 단면이다. 한미약품과 셀트리온, 대웅제약과 메디프론, 한올제약과 유한양행 등의 공동연구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신약 개발과 마케팅 및 영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치료제는 2가지 제제를 합친 복합제가 인기다. 한미약품의 아모잘탄, 한독약품의 아마릴메트, 한국MSD의 트레답티브 등이 해당된다.

현재 개발되는 약물들도 예외는 아니다. 보령제약과 부광약품은 각각 고혈압과 B형 간염치료제를 복합제 형태로 개발 중이다. 한미약품도 2가지 계열을 합친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영업과 마케팅도 뭉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한국노바티스와 화이자·한독, 베링거인겔하임과 릴리, 대웅과 한국MSD·아스트라제네카 등이 구약, 신약을 가리지 않고 뭉침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독자 노선을 고수하던 한미약품까지 GSK와 협력해 눈길을 끈바 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러한 사례는 많은 편이다. 머크주식회사의 고혈압제는 중외제약이, 세르비에는 제일·영진 등과 조용히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이처럼 합병과 협력을 하는 이유는 제약시장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 때문이다. 인수합병의 경우 초기 투자비용이 들어가지만 장기적으로 파이프라인 확보로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고, 영업 및 마케팅 협력 역시 수익분배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초기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꼽히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정책 등으로 제약사들이 과감한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이유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협력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약의 경우에는 비슷비슷한 약들이 많아 경쟁력 확보 차원이기도 하고 치료 가이드라인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도 있다. 어쨌거나 뭉침 트렌드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업계는 당분간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제약 전문 애널리스트는 “블록버스터급 신약확보, 약가재평가에 따른 매출부진, 치료패턴 변화 등으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휴가 더 많아질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양질의 협력관계를 발 빠르게 구축하는 것도 앞으로는 제약사들의 경쟁력 구축방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