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법정패소, 신약부재로 국내제약사에 러브콜
매출 궤도 오르면 라이센스 회수 ‘토사구팽’ 하기도

최근 들어 다국적 제약사들의 몸낮추기 행보가 이어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처럼 제품력 하나만 믿고 목에 힘을 주던 자존심은 없어진지 오래다.

몸낮추기의 양태도 대형품목 나눠주기부터 특허만료의약품 협력, 급여등재를 위한 폭넓은 가격인하 등 여러 가지다.

이 가운데 한국MSD와 한국노바티스가 DPP-4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를 출시하면서 각각 국내제약사인 대웅제약과 한독약품을 파트너로 선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MSD와 노바티스는 당뇨병 시장에 처음 진출하지만 각사 모두 마케팅과 영업력이 뛰어나 마음만 먹으면 독자영업도 가능한 회사다. 하지만 처음부터 국내사와 함께 가는 것은 한국제약사 영업력에 대한 매력 때문이다. 결국 나름 주판알로 득실을 따져볼 때 신약임에도 몸을 낮출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저자세 경향은 상당히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미 강력한 영업력을 구축한 품목도 국내제약사와 협력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MSD와 GSK는 백신에 강점을 가진 회사인데도 자궁경부암 백신과 로타바이러스 백신의 출시와 함께 각각 SK케미칼과 녹십자와 협력하고 있다. 영업과 유통라인이 상대적으로 강하지 않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급여등재를 위한 파격적인 가격인하도 몸낮추기 행보 중 하나. 물론 정부의 가격인하 압박이 가장 큰 이유지만 등재못하면 퇴출이라는 부담감이 작용하면서 전에 없이 몸을 낮춰 협상에 임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 내분비계열 치료제, 안과용제, 정신계 의약품이 제약사 기대 약가보다 적게는 10%에서 최대 40%까지 깎였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장방어차원에서 특허만료 의약품을 국내사와 협력하는 사례도 일종의 몸낮추기에 해당한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가 넥시움을 대웅과 협력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금까지 국내사와 협력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역시 매출하락으로 인한 부담감이 심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최근에는 한국MSD 코자와 한미약품의 아모디핀과 병용약제를 위해 협력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MSD(프로페시아), 사노피아벤티스(엘록사틴), 화이자(리피토) 등이 잇따라 법적 패소를 당한 것도 외자사의 몸낮추기 행보에 일조하고 있다.

한 다국적 제약사 임원은 "이같은 외국계 제약사의 변화는 신약출시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데 따른 불가피한 행보"라고 진단하고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사들은 어려운 시기에 서로 윈-윈하는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지만 시장만 키워주고 내침을 당한다는 ‘토사구팽’으로 끝난 사례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