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는 비록 조연이지만 주연에 버금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약물관련 대규모 임상시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연은 임상시험을 후원한 제약회사의 약물. 조연은 그 약물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비교한 약물이다. 대부분의 임상시험 디자인이 주연을 빛나게 할 수 있도록 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예상외로 비교약물의 진면목이 새롭게 주목받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케이스는 Ca길항제인 노바스크(암로디핀)가 대표적이다. 이 약은 노바티스가 후원한 VALUE 스터디에서 ARB인 발사르탄(상품명 디오반)과 비교하기 위해 대조약물로 선정됐다. 예상은 당연히 발사르탄의 효과 우위. 하지만 예상과 달리 노바스크가 발사르탄보다 강압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노바스크는 돈 한푼 안들이고 약효의 우수성을 재입증 받았다. 이 연구는 고위험군 환자의 심혈관계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과 이환율을 검증한 것이었다.

당황한 노바티스가 발사르탄의 당뇨병 발생 감소효과를 강조했지만 1차 엔드포인트 리스트에 포함돼 있지 않은 관계로 속담에서 볼 때 ‘죽 쒀서 개 준’ 격이 됐다. 화이자 역시 이 기회를 놓칠세라 “암로디핀의 우수성이 VALUE 스터디에서 재확인됐다”며 계획에도 없던 마케팅을 벌이기도 했다.

트리테이스(라미프릴)도 마찬가지다. 이 약은 베링거인겔하임이 후원한 ONTARGET 연구에서 텔미사르탄의 비교약물로 나왔지만 역시 두 약물의 효과가 동등한 것으로 결론나면서 트리테이스의 안전성이 재조명됐다. ONTARGET은 고위험군 환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심혈관 보호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였다.

이 연구 덕분에 라미프릴은 심혈관 보호 및 예방의 우수성이 또 한번 검증된 셈이다. 판매사인 한독약품 역시 “HOPE 스터디에서 검증된 결과가 ONTARGET을 통해 재확인됐다”며 마케팅 계획을 수정하기도 했다.

앞의 경우와 조금 다르지만 ACE 억제제 아서틸도 ‘무임승차’ 효과를 톡톡히 본 케이스다.

아서틸은 화이자가 후원한 ASCOT-BPLA 연구에서 노바스크와 병용한 약물. 대조군인 베타차단제+이뇨제군과 각각 심근경색과 심혈관질환 발생을 비교한 이 연구에서는 ‘당연히“ 노바스크-아서틸 병용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조기 종료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새로운 당뇨병 발병과 신기능 장애 발생 억제 효과가 아서틸 때문이라는 연구자들의 분석이 나오면서 아서틸은 때아닌 호재를 만나게 됐다. 연구 발표 당시 노바스크의 효과를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아서틸을 먹어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학계의 관심도 집중된 바 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비록 다른 제약회사가 후원한 임상이지만 기존 약물의 효과를 재검증할 수 있다는 점은 근거중심 의학(EBM)을 기반으로 하는 약물에서는 상당히 큰 이득”이라고 말한다. 해당 약물을 처방하는 전문가에게 더 큰 확신을 주면서 점차 매출 곡선의 하향 경향을 상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어부지리 효과’는 고혈압 치료제 분야 외에도 약물의 패러다임 쉬프트가 가속화되고 있는 당뇨병, 고지혈증 등 다른 치료제 분야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효과를 보는 약물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